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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백성의 구원자(la Salus Populi Romani)”, 교황이 간직했던 성모님에 대한 각별한 사랑

“로마 백성의 구원자(la Salus Populi Romani)”, 프란치스코 교황이 간직했던 성모님에 대한 각별한 사랑


성모 대성전 승계권 대사제 마크리카스 추기경은 미디어와의 짧은 만남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모 마리아 대성전에 안장되기로 선택한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했다. 

 

Stefano Han, Vatican News


프란치스코 교황의 시신은 그 장례미사 후, 로마의 성모 마리아 대성전으로 옮겨지고 “로마 백성의 구원자(la Salus Populi Romani)” 성화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가 준비된 곳에 안장될 것이다. 이는 지상에서 교황이 어머니께 드리는 마지막 인사일 것이다.


교황이 처음부터 성모 마리아 대성전에 묻히기를 원했던 것은 아니다. 마크리카스 추기경에 따르면 2022년 5월 13일, 파티마 성모님 발현 기념일에 교황과의 만남에서 이 문제를 다루기는 했다. 그러나 교황과 마크리카스 추기경과 이날 만남은 교황의 무덤에 대한 문제가 아니었고 대성전 내에 있는 파올리나 경당 개보수 문제 때문이었다.

그 자리에서 추기경은 이 곳에 자주 오시니까 여기에 묻히기를 원하지 않냐고 질문했으나 그 때 교황은 아니라고 답했다. 그러나 일 주일 후인 5월 20일 교황은 마크리카스 추기경을 불러 성모님이 거기에 무덤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며 자신이 성모 마리아 대성전에 묻히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당시를 기억하며 밝힌 교황과 마카리스카 추기경의 대화 내용이다:


교황님은 ‘[처음에]아니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교황들은 성 베드로 대성당에 안장되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러나 일주일 후, 교황님은 저를 다시 불러서 말씀하셨습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는데 ’무덤을 준비하라'고. 이어서 교황님 말씀하시기를 “나는 기쁘다. 성모님께서 나를 잊지 않으셨기 때문이다”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교황님은 저에게 단순히 말씀하셨어요: “내 무덤을 위한 장소를 찾아라. 왜냐하면 나는 이 성당에 묻히고 싶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로마 백성의 구원자(la Salus Populi Romani)를 재위 기간 중에 126회 방문했다. 그 만큼 성모님에 대한 신심이 남달랐던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교황이 되기 전에도 로마에 올 때마다 주일 아침이면 성모 마리아 대성전에 가서 기도하곤 하였다. 이런 교황의 남다른 성모님 신심은 2023년 로마백성의 구원자 성모님 앞에 “금장미(Rosa d’oro)”를 봉헌하면서 아주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마지막으로 교황은 제멜리 병원에서 퇴원하여 산타 마르타로 가기 전에도 잠이 성모님 앞에서 기도하고 간 일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교황이 다른 교황들처럼 베드로 대성전 지하에 묻히지 않고 성모 마리아 대성전에 안장되는 것에 대하여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 대성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 이전에 이미 7명의 교황들이 모셔져 있다. 그들 가운데 최초의 프란치스코회 출신 니콜로 4세, 최초의 도미니코회 출신 비오 5세가 있다. 이제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 프란치스코가 있게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 이전에 이곳에 안장된 마지막 교황은 1669년 클레멘스 9세 교황이다.


성모 마리아 대성전에 안장되는 최초의 교황 호르헤 베르골리오, 프란치스코 교황과 성모 마리아 대성전과의 관계는 또 다른 이유에서 각별하다. 1538년 성탄날 밤에 예수회 창립자인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이 이 성당에서 사제가 된 후 첫 미사를 봉헌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아기 예수님을 모셨던 ‘유물 성 요람(la reliquia della Sacra Culla)’이 보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냐시오 성인은 첫 미사를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에서 거행하기를 원했으나 거기에 갈 수 없었던 이유로 서품된 후 일 년 뒤인 1538년 성탄 밤에 이 곳, 적어도 예수님을 모셨던 ‘유물 성 요람(la reliquia della Sacra Culla)’이 보관된 곳에서 첫 미사를 봉헌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프란치스코 성인이 자신의 수도회의 회칙을 승인받기 위하여 기다리던 산 조반니 라테라노 대성전과 성모 마리아 대성전이 언덕 하나를 놓고 연결되어 있다는데 찾아볼 수 있다. 프란치스코란 교황 호칭을 선택한 것은 교황 자신이 프란치스코 성인의 청빈의 삶을 본받고자 하는 지향을 드러낸다. 전통적으로 성체성혈 대축일 행렬은 산 조반니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성모 마리아 대성전으로 가는 길에서 진행되곤 하는데 이런 영적 연결점은 교황이 자신의 무덤을 이 곳에 정하는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무덤은 파올리나 경당과 스포르차 경당 사이의 측랑에 위치하게 되는데 이 곳은 성 프란치스코 제단 바로 옆이란 점도 고려할 만한 부분이다.

이제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모 마리아 대성전에서 로마 백성의 구원자(la Salus Populi Romani)이신 성모님 곁에 영면한다.

추기경들은 4월 27일 오후 4시 성모 마리아 대성전 성문(Porta Santa)을 통과해  들어가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무덤 앞에서 잠시 기도 한 후에, 자비의 주일 제2 저녁기도를 로마 백성의 구원자(la Salus Populi Romani)이신 성모님 성화 앞에서 함께 바친다.
 

26 4월 2025, 13:53